현민이 이야기

올해 중학생이 된 현민이는 엄마, 아빠 다음으로 아이언맨을 가장 좋아합니다.

보청기처럼 생긴 기계와 대화하면서 하늘을 날아다니며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는 장면에서는 자신의 귓바퀴에 걸려있는 물건이 왠지 자랑스럽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현실로 돌아오면 현민이는 학교에 가야하고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주변 친구들의 표정을 살핍니다. 어렵고 답답한 수업시간에는 묵묵히 앉아 있어야 합니다. 조심해서 또박또박 말한다고 애쓰지만 현민이와 친한 몇 몇 친구를 제외하면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아 섭섭하지만 마음 한켠에는 놀리거나 괴롭히지 않는게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죠.

엄마, 아빠는 현민이가 책을 많이 읽고 영화도 자주 보길 바라지만 현민이는 책도 영화도 모두 어렵습니다. 어려운데 어떻게 어려운지 표현할 방법이 막막해서 그냥 짜증을 내거나 인공와우를 빼버리고 ‘안들려~ 안들려~ 상태’로 숨어버리곤 합니다.

현민이는 태어난지 39개월하고 하루가 되던날 오른쪽 귀에 인공와우 이식수술을 받았습니다.

석 달 더 일찍할 수 있었지만 현민이 엄마와 아빠는 두려웠어요. 아프지는 않을까?하는 걱정부터 이게 정말 현민이에게 도움이 될까? 현민이는 이걸 원할까?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부작용은 없을까? 현민이가 태어난 이후로 매순간마다 인공와우 수술을 해야할지 나중에 현민이가 큰 다음에 물어봐서 해야할지 고민했습니다.

엄마, 아빠도 현민이가 책 읽고 영화 보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걸 압니다. 그런 걸 좋아하지 않는건 엄마, 아빠도 마찬가지라고 애써 이해해보려고 하지만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합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딱히 뭔지 모르니 현민이가 건강하고 엄마,아빠의 목소리를 듣고 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불편한 마음을 잠시 접어 놓습니다.

현민이가 책과 영화를 안좋아하는 이유

현민이는 태어날 때부터 다른 친구들에 비해 듣는 능력이 약했습니다. 어떤 아기는 소화능력이 약하고 어떤 아기는 아픈 심장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처럼, 현민이의 경우에는 듣는 능력이 약한 상태로 태어났습니다.

아기는 자신의 울음소리와 음악소리도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로 태어나 엄마 목소리를 기준으로 다른 소리를 구분하기 시작하고, 엄마의 소리를 흉내내면서 말을 배우며 성장합니다. 그러면 현민이는 어떨까요?

현민이는 39개월 하고 이틀이 되던 날 엄마 목소리를 처음 들었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인공와우 이식수술 후 ‘매칭훈련’이라고 하는 소리구분 연습을 한 이후에 알았습니다.

소리에 대한 경험이 다른 친구들에 비해 4년 넘게 늦어진 셈입니다.

한글은 소리내는 방법을 표시한 규칙입니다. 소리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한글의 단어가 어떤 사물이나 의미와 연결되어 있는 것 같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소리와 의미가 연결’되고 한글은 그 소리를 똑같이 반복하는 규칙을 표시한 기호입니다.

현민이는 친구들에 비해 늦어진 4년을 극복하기 위해 지금도 애를 쓰지만 여전히 글 읽는 것이 어렵습니다. 글은 소리로 변하고 그 소리에서 의미를 떠올려야 하는데, 머릿속에서 글을 소리로 바꾸는 속도가 친구들만큼 빠르지 않아서 보이지 않는 노력을 많이 해야만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민이는 영화속 등장인물들의 대화나 자막도, 글로 채워진 책도 불편합니다. 아이언맨을 좋아하지만, ‘아이언맨’ 말고는 그렇게 애써서 보고 싶지는 않아요. 아이언맨은 그림만 봐도 충분히 재미있거든요.

현민이의 문해력은 다른 친구들과 얼마나 차이가 날까요?

국립국어원 조사연구 보고서 다운로드

2014년 국립국어원 연구에 따르면 청각장애 친구들의 문해력은 건청(비장애) 친구들의 57% 수준이라고 합니다.

57%는 친구들이 두번째 페이지 마지막 문장을 읽고 세번째 페이지로 넘기고 있을 때, 현민이는 이제 막 두 번째 페이지 첫 문장을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일이 수업시간 내내 그리고 수업시간이 아닌 모든 생활 속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2020년 최신 기사를 보면 생후 1개월 이내에 인공와우 수술을 성공한 사례가 있지만, 한국의 복지제도에서는 생후 36개월을 기준으로 보청기 구입이나 인공와우 이식수술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생후 36개월에 인공와우 이식수술을 한다고 가정할 때, 위의 그림에서 청각장애 친구들의 문해력은 파란선에서 녹색선처럼 움직여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붉은선처럼 나타납니다. 왜 그럴까요?

문해력은 벽돌쌓기와 비슷합니다. 내가 읽은 만큼 성장하고, 내가 생각한 만큼 빈틈이 촘촘하게 채워집니다.

그런데 벽돌을 쌓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바닥을 튼튼하게 해야합니다. 현민이는 태어난 순간부터 39개월 하루가 되던 날까지 주변의 온갖 소음과 엄마, 아빠의 목소리로 세상의 소리에 의미를 담는 바닥공사를 튼튼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인공와우의 도움으로 소리를 듣기 시작한 이후로 지금도 매칭훈련과 언어치료를 받지만, 학교에서도 현민이의 언어세계의 바닥공사는 돌봐주지 않습니다. 다른 친구들의 벽돌만큼 쌓아올리는 것도 어렵지만, 튼튼하지 못한 바닥 때문에 곧잘 흔들립니다.

우리가 현민이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여행이든 탐험이든 출발하기 위해서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목적지가 어디인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현민이에게도 우리들에게도 ‘문해력’이라는 말 자체가 어렵고 손에 착감기지 않는 애매한 느낌입니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으니 지금의 내 위치를 아는 것도, 어디까지 가야하는지 정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글잼에서는 여러분의 참여 데이터로 아래의 그림처럼 보이지 않는 문해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보여줍니다. 나는 어디에 있는지, 함께 문제를 풀었던 친구들은 어디에 있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참여 데이터로 만든 시각적 보고서를 바탕으로 현민이는 틀린 문제를 다시 들여다볼지 다음 문제로 넘어갈지 스스로 판단하고, 궁금한 것은 게시판에 묻고 여러분이 답해줄 수도 있습니다.

글잼에서는 정답보다 오답이 더 중요합니다.

더 좋은 점수를 받아 높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아주 쉬운 문제라도 누군가는 틀리는 사람이 있고, 틀리면 틀린 만큼 맞추면 맞는 만큼 현민이의 벽돌을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위의 그림은 데이터리포트의 목적과 구현 방식을 보여주기 위해 만든 예시입니다. 현재 위의 그림과 같은 데이터리포트 시스템을 개발하는 중이며, 참여자가 많을 수록 더 좋은 리포트를 만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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